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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밀당이 필요했던 여행

운동을 싫어하는 나는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을 가도 호텔 방에서 뒹굴며 책만 읽다 오곤 한다. 몸을 움직이는 건 다 노동이라 생각해서 남들이 여행을 간다고 하면 “고생문이 훤하다”라고 김을 빼는 편이었다.   다리 관절 수술을 한 데다 평발이어서 오래 걷질 못하는 불편함도 여행을 좋아하지 않게 된 이유 중 하나이다. 공항에선 휠체어 서비스를 받고, 크루즈 배에선 스쿠터를 빌려 탈 수 있어서 그나마 수월했다.   항구에 정박한 후 선택 관광을 할 땐 보행 거리가 짧은 가장 낮은 단계의 옵션을 택해야 한다. 이번 여행은 ‘무엇을 보지 않을까’를 결정해야 하는 희한한 여행이었다. 나의 몸 상태를 고려 않고 건강한 이들처럼 관광에 욕심을 내다간 큰일을 치를지 모르기에 말이다. 꼭 볼 것만 보고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하는 내 마음의 밀당이 필요했다.   남들이 박물관 전시실을 돌아볼 때 나는 중간에 빠져나와 밖의 벤치에서 햇볕을 쬐며 사람구경을 하는 게 더 재미있었다. 싱그러운 바람이 얼굴을 스칠 때, 낯선 나라의 공기와 풍광을 홀로 즐기는 시간도 참 좋았다.   각 나라 사람이 뒤섞인 여행지에서 호리호리한 남편은 일본인으로 보고, 나를 중국인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서 흥미로웠다. “아리가또” “셰 셰 ” 를 화답하느라 추임새처럼 써보며 웃었다.   크루즈의 마지막 날, 요코하마에서 온천 도시 아타미로 갈 때 신칸센을 탔다. 히까리호는 정말 빨랐다. 올해가 신칸센이 생긴 60주년이라며 기념 스티커를 준다. 그에 비해 KTX는 올해가 20주년이다. 일본의 고속 열차는 대한민국보다 40년이 앞섰다. 최근의 IT기술은 일본을 따라잡았다고 하나, 공공 서비스나 공중도덕과 배려는 아직 일본이 앞선듯하다. 국민소득이 높다고 다 선진국인 것은 아닐 것이다.   대만과 일본을 거쳐 모든 소리가 귀에 쏙쏙 들어오는 한국에 도착했다. 광고에 안내방송까지 신경 안 써도 다 이해되는 모국어의 나라. 타이밍이 딱 맞게 유럽여행을 떠난 동생 집이 비어서 호텔 대신 편히 지낼 수 있었다. 다만 현지에서 개통한 전화가 없어 약간 불편했다. 무엇이든 실명 인증을 해야 해서 음식이나 물건을 미국 전화로 주문하기 어려웠다. 다행히 우버택시는 미국의 계정과 연계되어서 택시 타기는 편했다.   선인들은 여행을 ‘글자 없는 책’이라는 뜻으로 ‘무자지서(無字之書)’라 불렀다. 여행은 길에서 하는 독서라는 뜻일 터이다. 가져간 두 권의 책을 읽고 여행도 했으니 “독서로 혜안을 얻고 여행에서 개안한다” 는 멋진 중국속담에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한 달가량 긴 여행에서 무사히 돌아온 것이 대견하다. 여행길에 부축하느라 수고한 남편에게 절이라도 해야 할까 보다. 이정아 / 수필가이 아침에 밀당 여행 이번 여행 휠체어 서비스 독서로 혜안

2024-10-27

[마음 읽기] 어떻게 여행할 것인가

뉴욕은 어디에나 있다. 크라카우어의 『역사』를 펴니 서문을 뉴욕 컬럼비아대학의 폴 크리스텔러 교수가 썼고, 한밤중 침대에서 하드윅의 『잠 못 드는 밤』을 펼치니 이 책은 뉴욕의 뒤틀린 기억과  초상화 그 자체였다. 편집하며 읽은 원고의 저자인 비비언 고닉·그레이스 조·윌리엄 헬름라이히는 모두 뉴욕의 아들딸이다. 스타일과 문화, 정신의 푯대가 되곤 하는 이 도시에 나는 올 9월 처음 가볼 계획이다. 하지만 여행은 두어 달 전부터 이미 시작됐다.   1년 전 갔던 에든버러는 견학을 목적으로 했고 일행과 함께 움직였기에 나는 도시의 바글바글한 풍경만 보고 온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여행에서 나는 한순간도 은둔자인 적이 없었다. 들뜸과 피상성이 지배한 시간이었다. 그 기억을 덧씌우려고 오랜만에 혼자 떠나는 여행 계획을 세웠고, 올여름의 읽기·말하기·상상은 모두 뉴욕에 관한 것으로 채워졌다.   여행의 큰 재미는 ‘준비’에서 시작된다. 기초체력 다지기인 셈인데 이번엔 『사람들의 고향으로 가는 짧은 여행』『전사자 숭배』『잠 못 드는 밤』『역사』 『저스트 키즈』가 근력을 만들어줬다. 가장 관심 가는 것은 뉴욕의 사회 풍경이다. 최근 몇 달 새 가장 많이 들은 뉴스 중 하나는 바다 건너 탈출하다가 익사한 이민자들 소식이었는데, ‘다름’을 겁내지 않는 도시 뉴욕에서 맨 처음 걸으려는 곳도 20세기 초 동유럽·아일랜드· 이탈리아 출신의 저소득 이민자들이 살았던 동네다.   “이미 말하고, 읽고, 듣고, 꿈꿨던 것과 유사하게” 혹은 “책에서 표현하는 글과 정반대거나 아주 유사한 빛나는 삶을 발견하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라고 랑시에르는 말한다. 나는 그 도시에서 이웃집에 초대받을 만하지 않거나 진지한 사귐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무리에서 겉도는 이들도 만나게 될까. 그 어떤 사회적 풍경이 펼쳐지든 그건 지금 나무나 풀보다 더 내 관심을 끌어당긴다.   그다음에 갈 국립 9·11 추모관은 어떤 기분을 불러일으킬까. 몇 년 전 제주 4·3평화기념관에 갔을 때 비통한 심정이 흘러 그곳에 계속 머무르고 싶었지만 여행자로서 곧 그런 기분을 툭툭 털고 일어섰다. 어느 도시에나 떠도는 혼백과 출렁이는 만가가 있다. 이번 여행에서도 필연적으로 마주칠 텐데, 이때 조지 모스의 『전사자 숭배』는 우리가 느껴야 할 감정의 귀한 가이드라인이 돼줄 것이다. 이 책은 1차 세계대전의 전사자 묘지 참배인들을 ‘전장 순례’하는 이와 ‘전장 관광’하는 이로 대조시키며, 후자가 비판의 대상이 됐던 역사를 짚는다.   영국에서는 전사자 기리는 방법을 두고 폭넓은 논쟁이 있었는데, 핵심 사안은 비탄에 잠겨 추모만 해야 하는가, 아니면 도서관과 정원을 함께 조성해 산책하듯 묘지를 돌아볼 수 있는가였다. 실상을 파악해보니 사람들은 묘지에서조차 즐거움을 누리길 원했다. 그렇다면 뉴욕의 9·11 추모관에서 희생자들을 추념하는 것과 그곳의 공원을 거니는 여유 사이에서 내 감정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수년 전 도쿄를 여행할 때 신주쿠역 길바닥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던 노숙인을 봤고 그 이미지는 여태 선명하다. 윌리엄 트레버의 소설 속 아일랜드인 처녀 펠리시아는 미래(남자)를 찾아 런던으로 가지만 긴 여정 끝에 종이가방 하나에 살림을 챙겨 다니는 노숙인이 된다. 나의 아일랜드인 친구 루크는 서울의 길거리를 보며 “노숙인은 다 어디 갔어? 동냥하는 사람들은?” 하고 묻는다.   작가 하드윅은 미국 남부 켄터키 태생이지만 뉴욕을 흠모해 평생 그곳에서 살았다. 그렇다면 그녀의 소설 속 뉴욕은 빛의 도시여야 할 텐데, 정반대로 녹슬고 사방에 덫이 놓인 데다, 정상성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호텔에 득시글대는 등 불운이 덧칠된 도시다. 냄새나고 소란스럽고 마약에 찌든 이 장소는 저자의 시적 문체에 힘입어 더 선명하게 잔인해지고, 공기는 더 역해진다.   하지만 그런 작가 수천수만 명이 사는 곳이 바로 뉴욕이다. 펑크의 대모 패티 스미스와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이 도시에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굶기를 밥 먹듯 하고 이가 들끓는 침대에서 잤지만 그곳을 사랑해 절대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뉴욕은 예술로 뒤덮인 도시가 됐고, 나 역시 많은 시간을 미술관에서 보낼 것 같다.   끝으로 여행에서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후기다. 지금 나는 전기(前記)를 쓰고 있지만, 여행 후 다시 내 언어와 이미지로 가다듬어 단단한 글로 구축하고 싶다. 여행을 기억에 새기는 방식 중 하나는 글쓰기의 우회로를 통해서다. 그것은 사후적으로 여행자의 목소리에 정당성을 부여해주고, 이따금 그것들은 권위를 갖고 오랜 세월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 고착화된 이미지는 다음번 여행자가 균열을 내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할 것이다. 이은혜 / 글항아리 편집장마음 읽기 여행 예술가 여행 계획 도시 뉴욕 이번 여행

2023-09-04

[삶의 뜨락에서] 햇볕이 보약이다

나는 가능한 안 가본 데를 여행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내가 몇 살인지 안다. 지금은 매일 5마일 산책을 할 정도로 건강해 가 보고 싶은 나라를 찾아가지만 언제 몸이 말을 안 들을지 모른다. 한 번 가 본 곳은 일단 접어두고 새로운 경험을 가지고 싶다. 글(시·에세이·소설)을 쓰기 전의 여행은 요즘 여행과 많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미리 리서치하고, 예리하게 관찰하고, 의문을 가지고 대답을 찾고, 돌아와 추가 리서치하는 지금과 달랐다. 요즘은 휴대폰으로 찍고, 부지런히 메모하고, 가이드에게 많은 질문을 한다. 7월 마지막 주말 아미시 빌리지를 다녀왔다. 30년 전에 다녀왔으나 자세한 기억이 없고 글로 남겨 두지 않았다.     미국에는 아이리시가 독일계보다 많은 줄 알았다. 마이크로소프트 챗박스에 물어봤더니 예상외의 대답이 나왔다. 독일계가 두 배 정도 많았다. 아이리시계는 떳떳하게 밝히는데 독일계는 히틀러의 유대인 대학살 이후 대부분이 이름을 바꾸고 지하로 들어가 적은 것처럼 보일 뿐이다. 독일계는 미국뿐 아니라(지금은 대부분이 떠났지만) 중미(코스타리카, 과테말라 등)와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에도 많은데 집단촌을 이루어 그들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롱아일랜드 일부 지역에도 독일계가 모여 사는 곳이 있으며 심지어 나치 깃발까지 펄럭이고 있다고 들었다.   독일계는 일찍 펜실베이니아에 정착했다. 이 주에는 피츠버그, 해리스버그, 스탈츠버그 등 독일 지명이 많다. 랭카스터 일대에 흩어져 있는 4만여 명의 아미시는 수백 년 전 스위스, 네덜란드, 독일에 살던 퀘이커교에 속하는 종교집단이 박해를 피해 신대륙을 찾은 독일계다. 이들은 그들의 종교의식과 생활 방식을 고수하고 미국 법과 규범에 벗어난 삶을 살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 얻은 것 중 일부를 소개한다.     아미시는 우리 아이들처럼 공립학교에 다니지 않고 One Room School에서 스스로 교육을 한다. 교사는 대개 한 명, 8학년까지 가르치고 고등학교, 대학 과정은 없다. 그들은 부모에게 농사일, 가축 기르는 일, 건축, 장사를 배운다. 16살이 되면 데이트를 할 수 있는데 끼리끼리 혼인해 열 몇 살부터 아이를 낳고, 낙태가 허용되지 않아 한 가정에 아이가 평균 6~7명이 된다. 전기를 사용하지 않아 태양열을 끌어들여 배터리를 충전해 전기 대용으로 하고 있다. 아직도 집에서 아이폰, 삼성 갤럭시 등 요즘 휴대폰은 사용하지 않는다.     이들은 소셜 시큐리티 택스를 내지 않아 연금을 받을 수 없고, 의료보험 혜택도 없다. 아프면 의사를 찾아가 현금으로 해결하고, 불치병에 걸려 혼자 감당하기 힘들면 커뮤니티가 도와준다. 비행기를 가능한 안 타고 겨울이면 여러 명이 차로 플로리다 등지로 여행한다. 종교적 이유로 군에 안 간다. 이들이 부딪치는 가장 큰 딜레마는 아이들 교육. 대학을 꿈꾸는 자녀는 집을 떠나야 한다. 어떤 가정의 경우 자녀 7명 중 6명이 대학 진학을 위해 아미시 전통을 포기했다고 한다.   하룻밤 묵은 호텔 로비에 이런 말이 있었다. “Sunshine is the best medicine. (←햇볕이 보약이다)” 아름다운 햇살, 맑은 공기, 푸른 숲의 자연은 우리 몸을 건강하게 한다. 아미시는 신앙에 기초한 절제 있는 생활에 햇볕을 받으며 들판에서 일하기 때문에 건강하다고 한다. 자연과 가까이 지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느꼈다. 부지런히 햇볕 속을 걸어야겠다. 최복림 / 시인삶의 뜨락에서 햇볕 보약 유대인 대학살 고등학교 대학 이번 여행

2023-08-04

[기고] 여행자의 과거

미래는 늘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미래를 그럴듯하게 꾸며줄 자원들은 늘 현재, 이 순간에 있기에 현재는 대체로 미래에 저당잡힌다. 또한 우린 마치 ‘역사’가 없는 사람처럼 현재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지만, 기분전환 삼아 떠난 여행은 늘 과거로 돌아가게 하는 강력한 촉매가 된다.   수년 전 함께 유럽을 여행한 지인은 기차 안에서 초등학생 때 가족이 맞은 불운을 유쾌하게 펼쳐놨다. 힘 있던 가세가 기울자 부모님은 칼국숫집을 열어 아빠는 반죽을 하고, 엄마는 국수를 뽑았다. 그러던 중 어떤 일에 연루돼 엄마는 감옥에 가게 되었다. 거기서 엄마는 학생운동 하다 끌려온 여대생들 사이에서 연락책을 맡아 이야기는 마치 활극처럼 흘러갔다. ‘엄마가 감옥에 갔었다.’ 이런 말을 흥미롭게 할 수 있다는 걸 그 여행에서 배웠다. 그가 이야기를 마치자 고교 시절 내가 겪었던 학교폭력이 23년 만에 입에서 흘러나왔다.   여행은 기억을 끄집어내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한 여행자들은 예상치 못하게 그곳에서 먼 과거와 맞닥뜨린다. 현실에선 앞으로만 걸어나가기에 기억도 선택할 수 있는 것 같지만, 타국에서 들을 준비가 된 귀를 만나면 어두운 터널에 갇혀 있는 몹쓸 과거를 꺼내놓는다. 그런 점에서 모든 여행은 ‘시간여행’이다. 몇 년 전 타이베이를 함께 거닐었던 중년 남자 둘은 여행 말미에 파국으로 치달은 결혼생활을 털어놓았다.   8월에 에든버러를 찾은 것은 거기서 파주출판도시가 변모할 방향과 미래를 참조하기 위함이었는데, 우리 일행은 두 도시를 저울질하는 와중에도 내내 과거로 돌아갔다. 누구는 술 좋아했던 아버지 이야기를, 누구는 학창 시절 선생님께 매 맞고 입원한 아픈 이야기를 했고, 그런 와중에 분위기를 지배한 감정 하나는 지나온 시간의 후회였다.   K와 M은 동년배에 지방 출신의 공통 정서를 지녔고 사회적 자아가 돋보이는 이들이다. 일이 곧 삶 자체인 것처럼 매달려온 그들은 오십대에 접어들자 본연의 자아를 조금 되찾겠다는 마음을 먹었다(자기 과거에서 스스로 배제돼왔다는 것을 깨달으며). 이건 필요한 일이겠지만, 그들의 따뜻한 마음씨와 웃음소리, 편한 얼굴이 절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겠기에 나는 그들이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한 삶을 굳이 찾아나서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과거를 털어놓는다. 귀를 연다. 톱니처럼 맞물리는 내 경험을 꺼낸다. 그러다 상대와의 간극을 확인하며 나를 이질적으로 느껴 자기혐오가 조금 깃든다. 상대의 이야기에 계속 귀 기울인다.’ 이건 이번 여행을 하면서 반복된 패턴이었다.   “자네의 여행은 항상 과거 속에서 진행되는 것인가?” 이것은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쿠빌라이 칸이 사신 마르코 폴로에게 여행 보고를 받으면서 되물었던 질문이다. 마르코는 여느 사신들처럼 이국의 풍물과 제도를 들려주기보다 각 도시에 새겨진 기억들을 가지고 돌아왔고, 바로 그것이 그 도시를 존재시킨다고 보았다. 황제는 처음엔 갖고 온 물건들이 보잘것없다며 마르코의 향수 섞인 발언을 빈정거렸지만, 마침내 담배 연기를 피워올리면서 “불타버린 삶에서 타고 남은 찌꺼기” 같은 것, 과거 현재 미래의 뒤범벅 같은 것이 여행의 유산임을 깨닫는다.   그러니 우리의 이번 여행 목적은 미래를 구상하기였는데도 가장 많은 시간과 마음을 쏟은 것은 상대의 기억 들여다보기였다. 또 다른 일행 S는 에든버러를 여러 번 온 적이 있는데, 지금은 시력을 잃어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 그가 도시를 마치 자기 동네처럼 걸으며 거기 묻어 있는 냄새, 땟자국, 추억들을 들춰내자 ‘보이지 않는 도시’는 우리 눈앞에서 점점 더 뚜렷한 윤곽을 갖춰갔다. 에든버러는 축제 도시로서 자리매김한 지 75년 됐지만, 그 사회 풍경과 자연 풍경이 우리 과거와 맞물릴 때 도시는 새로운 색채를 얻는 듯했다. 특히 여성 셋이 오로지 몸으로만 대화한 공연 ‘도너츠’는 내가 과거 친구들 사이에서 느꼈던 갈구·갈등·작별을 응축한 것처럼 다가왔고, 나는 회복될 가능성이 없는 잃어버린 관계 몇몇을 떠올리며 내가 가진 과거가 빈약하다는 것도 직시했다.   여행자의 눈은 사물과 만난다. 에든버러와 더블린에서 가장 많이 바라본 사물은 현관문이었다. 몇백 년씩 된 그곳의 건물들은 사적 소유물이라 해도 주인이 손대거나 부술 수 없고 변별성이나 장식에의 욕구가 들면 현관문의 재질과 색·모양만 바꿀 수 있다고 한다. 거주자들의 욕망과 기억이 새겨져 있는 현관문을 바라보며 우리는 각자의 기억들을 새겨놓고 그곳을 떠나왔다. 이은혜 / 글항아리 편집장기고 여행자 축제 도시 아버지 이야기 이번 여행

2022-08-26

[웰컴 투 펫팸] 여행을 함께 하고 싶다면

 미국 대부분의 학교는 2월 프레지던트데이를 끼고 1주간 짧은 방학을 갖는다. 팬더믹 상황이라 예전처럼 많은 사람이 여행을 떠나진 않지만 그래도 이 기간을 이용해 기존의 생활반경을 잠깐 떠났다 오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필자의 집도 1주일 여행을 계획하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런데 들뜬 분위기의 가족 일원들과 달리 유달리 긴장하며 여행 가방 주변을 맴도는 일원이 있다. 필자의 반려묘이다. 여행 가방 속에 아예 똬리를 틀고 누워버렸다. 여행 가방을 챙길 때마다 늘 있는 일이다. 반려묘인 경우 비행기와 차를 타는 교통수단 자체에 큰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여행에 동반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미국에서 반려견을 동반하고 여행하는 사람들은 흔히 볼 수 있다. 이번 여행에서도 공항과 비행기에서 반려견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짧든 길든 반려동물을 여행에 동반하기에 앞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일단 반려견의 성향을 잘 알아야 한다. 평소 짧은 로드트립(road trip)에도 불안감을 호소하는 경우라면 펫 호텔이나 지인에게 맡기고 가는 편이 낫다. 비행기를 이용할 경우 한정된 수의 반려동물을 수용하는 경우가 많으니 이른 예약이 필수다. 차로 이동하는 로드트립일 경우 그 과정이 일단 안정적이어야 한다. 고속도로를 많이 이용하는 경우라면 소형견은 케이지나 캐리어를 이용해 뒷좌석에 안전벨트로 고정해 놓을 수 있다. 해먹을 설치해 뒷좌석에 편히 머무르게 할 수도 있다. 이때 평소 좋아하던 담요와 장난감을 꼭 챙겨서 여행에서 오는 불안감을 해소하게 하자. 복용하던 약이나 영양제가 있다면 반드시 챙겨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사람도 장거리 운전을 할 때 몇 시간마다 꼭 휴게소에 들러 리프레시하는 과정이 필요하듯 반려동물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휴게소는 반려견을 위한 놀이터를 마련해놓은 곳도 있으니 여행을 떠나기 전 반려동물 친화적인 장소를 갖춘 휴게소가 경로 가운데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기를 권한다. 또한 고속도로보다 국도를 이용해 다닌다면 더 자주 쉬어갈 수 있을 것이다.   건강한 반려동물일지라도 낯선 곳에 가서 머물다 보면 건강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한곳에 오래 머무는 여행이라면 그 주변 동물병원에 대한 위치와 운영시간 등에 대한 정보도 미리 찾아보고 가는 것이 필수다. 그래야 갑자기 아플 때 덜 당황하게 된다. 만일 첫 여행을 앞둔 어린 반려동물이라면 그들에게는 예행연습이 필요하다. 그들의 첫 여행이 일주일 이상의 장기로 진행된다면 불안감과 스트레스가 클 것이다. 가능하다면 하루 몇 시간의 로드트립이라도 미리 해보고 가는 것이 좋다. 정말 스트레스가 심하다면 침도 계속 흘리고 구토도 동반할 수 있다. 반려동물에게 얼마나 긴 여행이 가능할까 묻는 사람들이 있다. 하루 10시간 차를 타고 달리더라도 야외에서 30분 정도의 휴식과 놀이시간을 몇 시간마다 자주 갖는다면 그들은 예상외로 잘 견뎌낼 것이다.   건강상 문제가 있는 반려동물은 두고 가기도 데리고 가기도 불안하다. 어디로 얼마의 시간 동안 어떤 경로로 다녀오는가에 따라 다른 문제이니 담당 수의사와 상의해서 결정해야 한다. 아픈 노령견을 돌보느라 몇 년간 여행을 포기하고 사는 보호자들도 많이 보았다. 하지만 건강이 안 좋은 반려동물이 있더라도 병원에 관리를 맡기고 편안하게 여행을 다녀오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여행스케줄을 아픈 반려동물에게 무리 가지 않게 짜면서 같이 즐기고 오는 사람들도 많다. 어느 게 더 옳다라고 말할 수 없다. 반려동물에게 편안한 안식처만 주어진다면 어딜 가도 문제 될 게 없다는 것이다. 정소영 / 종교문화부 부장·한국 수의사웰컴 투 펫팸 여행 여행 가방 이번 여행 건강상 문제

2022-02-23

[살며 생각하며] 또 다른 여행의 시작

이번 여행은 충주를 출발하여 덕유산 국립공원의 무주구천동, 해남, 목포, 군산, 전주, 남원… 제법 여러 도시를 짧은 시간에 두루두루 보며 다녔다. 여행의 즐거움은 언제나 상상과 현실에서 오는 물리적 차이나 일치감을 확인하는 가운데 함께 행복감을 느끼는 것도 있지만 93세 아버지와 63세의 아들이 자동차를 타고 둘만 하는 여행은 특별한 감동이 있다. 이렇다고 할만한 말이 꼭 없어도 눈길과 숨결 만을 통해서도 서로가 깊이 많은 것을 소통하고 공감하는 특별한 시간이다.     몇 년 전 아버지와 둘만의 여행을 처음 시작했을 때 그전에는 못해 보았던 아버지의 손도 자연스레 잡고 어깨동무도 하고 부자간의 스킨십을 처음 시작했었다. 몇 해가 지나며 이젠 자연스러워 졌다. 지루한 운전을 하다 조수석에 조용히 앉아 계시는 아버지의 손을 슬며시 잡는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무언의 표현을 전했다. 그럴 땐 내 손을 더 힘있게 꼭 잡으시며 “아들아, 나도 많이 사랑한다.” 그렇게 무언으로 화답하신다. 아버지의 손은 늘 따뜻했다.     이번 여행은 어머니 소천 후 시작한 봄 가을 떠나는 부자만의 동행으로 네 번째 함께 떠난 여행이었다. 코로나로 세 번을 건너뛴 모처럼 떠난 2021년 가을 여행이었다. 매번 마다 달라지시는 아버지의 건강에 맞추어 떠나는 우리의 여행은 해가 더 해 질수록 기간은 짧아졌지만 그 의미는 더 커져가는 것 같다. 낮에는 여행을 하고 밤에는 그것을 정리하고 기록하여 아버지에게 글로 선물하는 여행이 몇 년째 지속되고 있다. 아버지는 내가 쓴 글들을 너무도 좋아하신다. 매순간이 너무도 귀해서 그 느낌을 서로 흘려버릴 수가 없다.     대한민국 어디를 가나 고속도로 휴게소는 먹거리도 많고 쉬었다 가고 싶은 편리하고 깨끗한 잘 관리된 곳이다.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 하고 기다리는데 아버지께서 화장실에 혼자 다녀오시겠다고 그쪽을 가리키셨다. 아버지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아버지의 작고 낮아진 두 어깨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잘 걸으시는 아버지가 너무도 자랑스럽고 감사한 마음에 눈가가 뜨거워졌다. 이 여행을 위해서 걷는 연습을 하셨다던 말씀이 얼마나 감사한지 많은 생각에 젖게 했다. 간혹 걷다가 쉬시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철렁해진다. 아들에게 건재함을 보이시기 위해 무리수를 두시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잘 살펴야 한다.     여행이 끝날 시간이 다가올 때 쯤이면 우리는 다음 여행을 의논 한다. 그 시간부터 우리의 여행은 또 이어지고 아버지와 나는 새로운 숙제를 시작한다. 2019년 추석 달을 보며 남해와 동해의 여행이 끝나갈 즈음에 우리는 그때 남도 여행을 계획 했었다. 이젠 또 다른 여행에 대한 계획을 하며 각자의 방법으로 다음 여행을 마음속에 키우는 것이다. 새로운 장소가 정해지면 그때부터 아버지의 새로운 검색은 시작되고 다음 행선지에 대한 관심으로 자료 수집에 들어가신다. 다음 행선지는 울릉도로 정했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아버지와 함께 갈수 있는 정도를 참고하고 결정을 내린 것이다. 2만톤급의 침실이 있는 전천후 울릉도 크루즈가 개통되었다고 한다. 내년 4월 벚꽃 피는 봄을 우리는 울릉도에서 맞이할 것이다. 그때엔 94세 아버지와 64세 아들이 함께 떠난 여행을 또 쓰게 될 것이다. 강영진 / 치과의사살며 생각하며 여행 시작 이번 여행 다음 여행 전천후 울릉도

202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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